밤 11시에 고객 문의가 들어왔다. 나는 언제 쉬지?

밤 11시에 고객 문의가 들어왔다. 나는 언제 쉬지?

밤 11시, 또 울린다

출근했다. 아침 9시. 피곤하다. 어제 자정까지 일했다.

슬랙을 켰다. 밤 11시 47분에 고객 문의. “결제 안 돼요. 급해요.” 그들은 급하다. 나도 급하다.

답변했다. 12시 2분.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없다. 이게 CS인가, 야근인가 헷갈린다. 회사라면 교대 근무가 있을 텐데. 나는 회사 자체다.


CS라는 이름의 24시간 근무

MRR 350만원. 이건 자랑인가, 한숨인가. 고객사 120개. 누군가는 언제나 깨어있다.

시차 문제는 없다. 한국만 있으니까. 하지만 고객 입장에선 몰라. 그들도 야근 중이다. 낮에 문제 못 본 게 밤에 터진다.

“제가 다 해요”라고 했는데, 이게 이런 뜻이구나. 대표 = 개발자 = 디자이너 = CS팀 = 회계. 대표만 없으면 다 내가 한다.

고객: “혹시 지금 봐줄 수 있나요?” 나: “네, 확인해볼게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슬랙 알림은 꺼놨다. 3일 전에. 그럼 놓친 문의가 있을까봐 켜놨다. 2시간 뒤. 악순환이다.

밤 11시. 새로 온 문의. 결제 오류니까 시급하다. 수익이 끊기는 순간이니까. 그들의 시간이 내 시간이 돼버린다.


혼자라서 더 빠르고, 혼자라서 더 외로운

투자 안 받은 이유가 이거다. 투자받으면 이사회가 생기고, 이사회는 회의하고, 회의는 길어진다. 나는 결정이 빠르고 싶다.

직원도 안 뽑은 이유가 이거다. 직원 뽑으면 급여 나가고, 관리해야 하고, 책임이 커진다. 나는 유연하고 싶다.

근데 지금 뭐 하고 있는가. 밤 11시에 고객 문제 해결하고 있다. 유연함이 자유가 아니라 속박이 됐다.

“빨리 가려면 혼자, 멀리 가려면 함께” 누가 한 말인데 맞는 말이다. 근데 난 빨리도 가고 싶고 멀리도 가고 싶다.

양쪽 다 못 하는 것 같은데. 빠르지도 않고 (혼자니까 느린 거다). 멀리도 못 간다 (스케일업 안 되니까). 그냥 지친다.

고객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하다. 120개 회사의 업무 흐름이 내 SaaS에 달려있다. 그 책임감은 좋다. 하지만 밤 11시에 깨어야 한다는 건 나쁘다.

혼자인 게 강점인 줄 알았다. 결정 빠르고, 비용 안 들고, 자유로울 줄 알았다. 맞다.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냐는 문제다.


밤 11시를 피할 수 없는 이유

직원 뽑으면 문제 해결 안 된다. 그들도 밤 11시에 안 본다. 시스템을 만들면? 그게 이 SaaS 아닌가. AI 챗봇? 고객은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결국 나다.

야근을 거부하면 고객이 떠난다. 경쟁사는 이메일 받으면 아침에 본단다. 나는 밤 11시에도 본다. 차이는 여기다.

MRR 350만원은 이 차이로 나온 건 아닐까.

그런데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럴까? 고객들이 나의 빠른 응답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조건을 만든 걸까?

첫 고객 때부터 빨랐다. 당시 나는 시간이 많았다. 홀 타임이니까. 그럼 지금도 같은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경쟁 우위가 됐다. 근데 이제 그게 족쇄가 됐다.

밤 11시 문의. “제가 다 해요.” 이 말이 이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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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라는 걸 몰라

2년 연속 여름휴가 없다. 겨울휴가? 뭐 그런 게 있나.

고객사들은 정상 운영한다. 그들이 멈추면 나도 멈춘다. 그들이 운영되려면 나는 깨어있어야 한다.

휴가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 응답?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외주? 그들도 내 시스템을 몰라. 야근? 휴가도 아니고 준비만 2배.

그래서 그냥 안 간다. 대신 시간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오후 3시에 밤 10시까지 일하고. 아침 9시에는 쉰다고 생각한다. 자기위로다.

병원 갈 때도 문제다. 감기 걸리면 회사가 멈춘다. 아프면 답변이 늦어진다. 늦으면 고객이 불안해한다. 불안하면 이탈한다.

그래서 병원도 잘 안 간다. 감기도 무시한다. 밤 11시에도 답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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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시 내일

밤 11시 47분, 고객 문의. 밤 12시 2분, 답변.

그 고객은 자신의 문제가 15분 만에 해결되길 바랐나? 아마도 아침 첫 일로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근데 나는 밤에 봤다. 감사하다고 메시지 왔다.

그게 맞는 건가 싶다.

직원 뽑으면? 고객 경험이 떨어질 거다. 투자 받으면? 성장 압박이 생길 거다. 지금 이대로면? 번아웃이 올 거다.

셋 다 불완전하다.

근데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면. 고객이 감사해하고. 수익이 나오고. 내가 만든 서비스가 누군가의 업무를 돕고 있다.

그게 충분할까?

아니다. 밤 11시는 너무 늦다.

내일은 뭘 할까. 슬랙 알림을 진짜 끌까? 고객에게 업무시간을 정의할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계속할까?

모른다. 내일 아침 9시에 피곤할 거 알면서도. 오늘 밤 11시에 또 고객 문의 받으면 답할 거다.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습관이 됐다. “제가 다 해요.”


밤 11시에는 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우리는 언제 쉬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