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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스트래핑 2년, 투자를 거절한 이유

부트스트래핑 2년, 투자를 거절한 이유

부트스트래핑 2년, 투자를 거절한 이유 그 이메일이 왔을 때 아침 9시. 메일함을 열었더니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투자 관련 논의 요청 드립니다." 처음엔 스팸인 줄 알았다. 우리 같은 조그만 서비스에 무슨 VC가. 근데 아니었다. 실제 투자사. 이름 들어본 곳. 시리즈 A 이상만 한다는 그 회사. "MRR 성장률 좋더라. 한번 만나서 얘기해보자."심장이 두근거렸다. 2년 동안 혼자 키운 회사. 누가 알아봐 준 적 없었는데. 트위터에 올려도 좋아요 몇 개. 그런데 투자사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남자친구한테 전화했다. "어떡해. VC에서 연락 왔어." "대박. 만나봐. 이게 기회지." 근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만나면 혼들릴 거라는 걸. 첫 미팅, 그리고 숫자들 홍대 카페. VC 두 명이 왔다. 노트북 펴고 질문 시작. "현재 MRR이요?" "350만원이요." "고객 이탈률은?" "월 5% 정도요." "CAC는?" "거의 안 들어요. 입소문이랑 SEO로." 메모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뭔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좋네요. 우리가 3억 투자하면, 1년 안에 MRR 3천 달성 가능할 것 같은데요?" 3천. 지금의 거의 10배. "어떻게요?" "개발자 2명, 마케터 1명 뽑으세요. 영업도 시작하고. 그럼 속도 나죠."들으면서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3억 받으면 지분 20% 정도 줘야겠지. 밸류에이션 15억 정도로 잡으면. 그럼 내 지분 80%. 들리는 건 좋았다. 팀 생기면 나도 좀 쉴 수 있겠지. 밤 11시에 오는 CS도 누가 대신 받아주고. 개발 속도도 빨라지고. 근데 뭔가 걸렸다. "투자 받으면, 목표 MRR 못 맞추면 어떻게 돼요?" "그땐... 네, 좀 힘들죠. 다음 라운드가 어려워지니까." 아. 그거구나. 혼자 일하는 게 편한 이유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지금 내 하루. 9시 기상. 씻고 거실 책상 앞에 앉으면 10시. 이메일 체크하고, CS 답장하고, 개발 시작. 점심은 배달. 오후 내내 코딩. 저녁에 SNS 돌리고, 블로그 쓰고. 밤에 유튜브 보면서 새 기능 구상. 피곤하냐고? 당연히 피곤하다. 주말도 없다. 아프면 회사가 멈춘다. 휴가는 꿈도 못 꾼다. 근데 이게 좋다.누구한테 보고 안 해도 된다. 뭘 만들지 내가 정한다. 고객이 "이 기능 좋네요"하면 바로 다음 날 만들어준다. 회의 없다. 일정 조율 없다. 그냥 노션에 적고 만들면 끝. 이게 2년 동안 350만원을 만든 이유다. 빠르게 움직였으니까. 고객 피드백을 3일 안에 반영했으니까. 투자 받으면? 직원 뽑으면? 이게 다 사라진다. "팀장님, 이 기능 언제까지 만들까요?" "이번 주 스프린트에 뭐 넣을까요?" "월요일 오전 회의 괜찮으시죠?" 상상만 해도 답답하다. 지분을 나눈다는 것 VC가 말한 대로 20% 준다고 치자. 3억 투자 받고. 지금 회사는 100% 내 거다. 뭘 해도, 어떻게 해도, 내 결정. 망해도 내 책임. 잘돼도 내 몫. 근데 20% 나눠주는 순간, 달라진다. 분기마다 보고한다. 목표 MRR 못 맞추면 설명한다. "왜 성장이 더딘가요?" "마케팅 비용 ROI가 왜 이래요?" "다음 라운드 준비는요?" 그리고 중요한 결정할 때마다 투자사 눈치 본다. "이 기능 만들까요?" "이 방향으로 피벗할까요?" 내 회사인데 내 마음대로 못 한다. 트위터에서 봤던 창업가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리즈 B 받고 나서 한 말. "투자사가 3개 들어오니까,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데 3주 걸렸어요. 예전엔 3시간이면 결정했는데." 3시간이 3주가 된다. 이게 투자의 댓가다. 나는 3시간이 좋다. 작은 회사의 장점 MRR 350만원. 연 매출 4200만원. 크지 않다. 직원 한 명 월급도 안 된다. 근데 이게 다 내 거다. 세금 떼고, 비용 빼면 실수령 300만원 정도. 혼자 살기엔 충분하다. 여유롭진 않아도 굶진 않는다. 무엇보다, 부담 없다. 고객사 120개. 한 달에 2~3개씩 이탈한다. 속상하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다. 새 고객이 5개 들어오면 된다. 이게 MRR 3천이면? 고객사 1000개면? 이탈 관리만 해도 풀타임 1명 필요하다. CS 담당 또 필요하고. 서버 비용 올라가고. 사무실 얻어야 하고. 그럼 직원 월급 줘야 한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 500만원. 무조건 벌어야 한다. 못 벌면 내 돈에서 메꿔야 한다. 지금은? 망해도 나만 아프다. 밥값은 나온다. 부모님 손 안 벌린다. 이 자유가 좋다. 빠른 성장 vs 지속 가능성 투자사가 원하는 건 성장이다. 빠른 성장. 1년에 10배. 3년에 100배. "유니콘 될 수 있어요." 유니콘. 들으면 가슴 뛴다. 나도 사람인데 욕심 없겠나. 근데 현실을 안다. 유니콘 되는 회사 몇 개나 되나. 투자 받은 스타트업 100개 중에 10개가 살아남으면 다행이다. 나머지 90개는? 망한다. 망할 때 제일 힘든 건 직원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라던데. 투자금 다 날리고, 월급 못 줘서, 정리해고 통보하는 거. 나는 그거 못 한다. 성격상 못 한다. 차라리 지금처럼 작게 가는 게 낫다. MRR 350만원에서 500만원, 500만원에서 800만원. 천천히 올라간다. 2배씩 성장 안 해도 된다. 매년 30%씩만 커도 5년 후면 괜찮은 회사 된다. 그리고 그 5년 동안 나는 번아웃 안 온다. 직원 스트레스 없다. 투자사 눈치 안 본다. 이게 내 속도다. 그날 저녁, 답장 VC한테 답장 썼다. 고민 2주 했다.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투자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조금 더 천천히 가보려고요." 보내고 후회했다. 3억이다. 3억. 평생 못 볼 돈일 수도 있다. 근데 그 순간 가슴이 편해졌다. 뭔가 무거운 게 내려간 느낌. 남자친구가 물었다. "진짜 거절했어? 나중에 후회 안 해?" "모르지. 근데 지금은 이게 맞는 것 같아." 트위터에 올렸다. "투자 제안 거절했습니다. 부트스트래핑 계속 갑니다." 댓글 10개 달렸다. 다 비슷했다. "용기 있네요." "부럽습니다." "혼자 가는 게 진짜 힘든데." 힘들다. 맞다. 근데 이게 내 길이다. 2년 차의 현실 지금 통장 잔고 2400만원. 비상금으로 모은 거. 6개월 치 생활비. 이게 내 안전망이다. 투자금 3억 대신 내가 모은 2400만원. 작지만 이건 진짜 내 돈이다. 돌려줄 필요 없다. MRR은 천천히 오른다. 작년 이맘때 250만원이었으니까 40% 성장. 유니콘 속도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다. 고객들이 가끔 물어본다. "직원 몇 명이세요?" "저 혼자요." "헐, 진짜요? 이걸 혼자 다 만드셨어요?" "네." 그럴 때 뿌듯하다.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이 서비스는 100% 내가 만들었다. 코드 한 줄 한 줄, 디자인 하나하나, 마케팅 콘텐츠 전부. 외주 디자이너 빼면 다 내 손. 투자 받고 팀 꾸리면 이 느낌 사라진다. "우리가 만들었다"가 된다. 나쁜 건 아니다. 근데 나는 "내가 만들었다"가 좋다. 혼자의 한계 물론 한계는 있다. 명확하다. 새 기능 만드는 데 3주 걸린다. 팀 있으면 1주면 된다. 고객 요청 10개 중에 2개만 처리한다. 나머지는 "죄송합니다, 우선순위가..." 마케팅도 약하다. 블로그 쓰고, 트위터 하는 게 전부. 유료 광고는 ROI 안 나와서 안 한다. 영업은? 꿈도 못 꾼다. 경쟁사는 벌써 팀 10명. 투자 받았다. 기능 빨리 나온다. 고객도 빠르게 늘어난다. 가끔 불안하다. '나 너무 느린 거 아냐?' '이러다 도태되는 거 아냐?' 근데 다시 생각한다. 그 회사, 3년 후에 살아있을까? 번아웃으로 대표가 나가떨어지진 않을까? 나는 3년 후에도 여기 앉아서 코딩하고 있을 거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거북이가 토끼 이긴다고 했다. 나는 거북이 쪽이다. 투자 없이 성장하는 법 혼자서 MRR 350만원 만든 방법. 간단하다.고객 말 듣기. 매일 듣기. 요청 바로 반영. 빠르게 출시. 완벽 기다리지 말기. 무료로 시작. 가치 느끼면 유료 전환. SEO에 올인. 블로그 매주 1개. 트위터 빌딩 인 퍼블릭. 과정 공유.돈 거의 안 들었다. 서버비 월 30만원. 도메인, SaaS 도구들 합쳐서 10만원. 디자인 외주 월 50만원. 총 고정비 90만원. MRR 350만원에서 빼면 순이익 260만원. 여기서 세금 내면 200만원 정도 남는다. 적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보다 훨씬 적다. 근데 나는 사표 안 써도 된다. 출퇴근 안 한다. 회의 없다. 상사 눈치 안 본다. 이 자유가 200만원보다 값지다. 만약 다시 그 제안이 온다면 1년 후, 2년 후, 또 투자 제안 올 수 있다. MRR 1000만원 넘으면 분명 온다. 그때도 거절할까? 모르겠다. 그땐 또 다를 수 있다. 혼자의 한계가 명확해질 수도 있고. 시장이 너무 빠르게 변할 수도 있고. 근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 투자 받으면 내가 원하는 회사 못 만든다. 작고 느리고 지속 가능한 회사. 유니콘 아니어도 되는 회사. 나 하나 먹고사는 회사. 이게 내 목표다. 거창하지 않다. "세상을 바꾸겠다" 이런 거 없다. 그냥 고객 120명한테 도움 되는 서비스 만들고, 나는 먹고살고, 그게 전부. 투자사는 이해 못 한다. "목표가 너무 작다"고 할 거다. 근데 나한텐 이게 크다. 충분히 크다. 오늘의 MRR 어제 새 고객 2개 들어왔다. 월 4만원짜리 요금제. MRR 8만원 증가. 작다. 엄청 작다. 근데 이게 쌓인다. 하루에 8만원씩 365일이면 연 2920만원. MRR로 치면 240만원 증가. 이런 식으로 2년 키웠다. 하루에 고객 1~2개씩. 천천히. 투자 받았으면? 한 달에 고객 50개씩 목표 잡았을 거다. 달성 못 하면 스트레스. 달성해도 다음 달 목표 더 높아진다. 나는 하루에 2개로 충분하다. 이게 내 속도니까. 창업가 친구의 말 작년에 만난 친구. 같이 창업했던 사람. 시리즈 A 받았다. "요즘 어때?" "미치겠어. 투자사가 자꾸 목표 올리래. 이번 분기 MRR 2억 찍으래." "할 만해?" "모르겠어. 팀원들 번아웃 오고 있고. 나도 주말에 쉬는 거 2달째 못 했어." "그래도 돈은 많이 벌잖아." "응. 근데 내 돈 아니야. 다음 라운드 못 받으면 다 물거품이야." 그 친구 요즘 안 만난다. 너무 바쁘다고. 나는 주말에 남자친구 만난다. 카페 가서 수다 떤다. 영화 본다. 평범한 일상. 누가 더 성공한 건지 모르겠다. 친구는 시리즈 A, 나는 부트스트래핑. 회사 가치로 치면 친구가 이겼다. 근데 삶의 질로 치면? 글쎄. 나는 오늘 점심에 낮잠 잤다. 부트스트래핑의 미래 5년 후 목표. MRR 1500만원. 연 매출 1.8억. 유니콘? 아니다. 근데 나 혼자 먹고살기엔 충분하다. 여유롭게 산다. 여행도 간다. 부모님 용돈도 드린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다. 직원 안 뽑았다. 외주 디자이너랑 개발자 가끔 쓴다. 그게 전부. 회사는 여전히 100% 내 거다. 지분 하나도 안 나눴다. 이게 내가 꿈꾸는 회사다. 작지만 건강한. 느리지만 지속 가능한. 투자를 거절한 진짜 이유 결국 이거다. 나는 유니콘 만들고 싶지 않다. 큰 회사 안 부럽다. 팀 10명, 20명 이끄는 거 무섭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내 속도로 살고 싶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출근이 싫지 않은 삶. 고객 메일 읽을 때 설레는 일. 투자 받으면 이게 사라진다. 일이 의무가 된다. 고객이 숫자가 된다. 나는 그게 싫다. 그래서 거절했다. 3억을. 후회하냐고? 가끔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근데 오늘 아침, 거실 책상에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노트북 켤 때, 생각했다. '아, 오늘도 내 맘대로 할 수 있구나.' 이 느낌이면 충분하다.작은 회사도 괜찮다. 느려도 된다. 내 속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