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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회사가 멈춘다. 그래서 나는 감기에 걸린 채로 일한다

아프면 회사가 멈춘다. 그래서 나는 감기에 걸린 채로 일한다

아프면 회사가 멈춘다. 그래서 나는 감기에 걸린 채로 일한다 목요일 새벽 4시, 열이 38.5도 목이 칼로 긋는 것처럼 아팠다. 어제 저녁부터 몸이 이상했다. 으슬으슬하더니 밤새 열이 올랐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흘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타이레놀을 찾았다. 없었다. 핸드폰을 켰다. 슬랙 알림 7개. 카톡 문의 3개. 이메일 12개. "예약 시스템이 안 돼요. 급합니다." 목요일 아침 9시 오픈하는 요가 스튜디오 고객사였다. 지금 6시간 후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노트북을 켰다. 감기에 걸렸다는 건 1인 회사에서는 재난이다.혼자 회사를 하면 백업이 없다 2년 전 퇴사할 때 이 부분을 생각 못 했다. 회사 다닐 때는 아프면 연차 냈다. 아무도 뭐라 안 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갔다. PM이 없으면 다른 PM이 회의에 들어갔다. CS 팀이 고객 문의를 받았다. 지금은 내가 회사다. 개발자도 나. 마케터도 나. CS 담당도 나. 대표도 나. 한 명이 쓰러지면 전부 멈춘다. 고객사 120개가 내 SaaS를 쓰고 있다. 예약 관리 시스템이다. 요가 스튜디오, 필라테스, 헤어샵, 네일샵. 다들 영업 시간에 예약을 받는다. 시스템이 다운되면 그들의 하루 매출이 날아간다. 내가 아프든 말든 상관없다. 고객의 예약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픈 채로 일한다. 2년간 제대로 쉰 날: 5일 노트북 히스토리를 확인했다. 창업 후 730일. 노트북을 안 켠 날은 5일이었다. 설날 1일. 추석 1일. 작년 12월 남자친구랑 제주도 간 날 3일. 제주도 때도 새벽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CS 확인했다. 완전히 쉰 건 아니다. 주말도 없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문의가 온다. "일요일인데 예약이 안 잡혀요." "토요일 오후인데 시스템 오류 같아요." 답한다. 10분 안에. 안 그러면 불안하다. 환불 요청 들어올까봐. 나쁜 리뷰 올라올까봐. MRR 350만원. 이게 내 생계다. 월세 70만원. 건보료 20만원. 카드값 50만원. 외주 디자이너비 30만원. 남는 게 180만원.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아프다. 그래서 쉴 수가 없다.감기 걸린 날의 타임라인 오전 9시 타이레놀 먹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요가 스튜디오 예약 시스템 버그 수정. 30분 걸렸다. "해결됐어요! 감사합니다🙏" 답장 안 했다. 목이 너무 아팠다. 오전 11시 약국 갔다. 5분 거리. 종합감기약 샀다. 귀가. 핸드폰 확인했다. 문의 2개. "결제가 안 되는데요?" "환불 어떻게 하나요?" 침대에 누워서 답했다. 결제는 PG사 일시 오류였다. 환불은 정책 안내했다. 오후 2시 라면 끓여 먹었다. 반만 먹고 버렸다. 입맛이 없었다. 몸이 축 늘어졌다. 노트북 다시 켰다. 개발 일정 밀렸다. 이번 주에 배포하기로 한 신규 기능. 못 할 것 같았다. 트위터에 썼다. "감기 걸렸는데 일해야 되는 게 1인 회사의 현실." 좋아요 38개. 댓글 7개. "쉬세요ㅠㅠ" "나도 작년에 독감 걸려서 일주일 망했어요." "혼자 하면 리스크 관리가..." 알고 있다. 다들 안다. 하지만 쉴 수가 없다. 오후 5시 낮잠 잤다. 2시간. 일어나서 핸드폰 봤다. 문의 5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오후 3시부터 결제가 안 돼요." "예약 목록이 안 보여요." 서버 오류였다. AWS 비용 자동결제 실패. 카드 한도 초과. 미친. 노트북 열고 카드 바꿔서 결제했다. 서버 복구. 20분 걸렸다. 고객사들한테 하나하나 답했다. "일시적 오류였습니다. 복구 완료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답장 12개. "확인했어요." "다음부턴 조심해주세요." "괜찮아요^^" 한 명이 환불 요청했다. 3개월 구독권. "믿을 수 없네요. 환불 부탁드립니다." 환불해줬다. 9만원. 침대에 누웠다. 울고 싶었다. 밤 11시 저녁은 안 먹었다. 노트북 열어서 밀린 개발 작업 조금 했다. 1시간. 더 이상 못 하겠어서 껐다. 내일도 이럴 것 같았다.치과 예약을 세 번 미뤘다 작년 10월에 치과 가기로 했었다. 사랑니 발치. 예약하고 전날 취소했다. 고객사에서 긴급 문의가 들어왔다. 11월에 다시 예약했다. 또 취소했다. 신규 기능 배포일이었다. 12월에 세 번째 예약했다. 이번엔 갔다. 대기실에서 노트북 켰다. 핫스팟 켜서 작업했다. "윤솔로님?" 간호사가 불렀다. "잠깐만요. 5분만요." 고객 문의 답변 중이었다. 간호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봤다. 알고 있다. 이상해 보인다는 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발치하는 동안은 핸드폰 못 봤다. 30분. 끝나고 바로 확인했다. 문의 3개. 다 답했다. 입에서 피 나는 채로. 집에 오자마자 거울 봤다. 입술에 피 묻어 있었다. 노트북 자판에도. 웃겼다. 이게 내 삶이구나. "그럼 직원 뽑으면 되잖아요" 남자친구가 말했다. "왜 혼자 해. 사람 한 명만 뽑아도 되잖아." 안 된다. 직원 뽑으면 월급 줘야 한다. 최소 250만원. 4대보험 포함하면 300만원. 지금 내 MRR이 350만원이다. 순이익 180만원. 직원 뽑으면 내가 남는 게 없다. "그럼 더 키워." 어떻게? 지금도 혼자서 개발, CS, 마케팅 다 한다. 더 키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 쓰려면 일을 덜어야 한다. 일 덜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순환논리다. "투자 받으면 되잖아." 지분 나누기 싫다. 2년 혼자 굴렸다. 내 회사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 투자 받으면 보고해야 한다. 설명해야 한다. 성장 압박 받는다. 지금도 힘든데 그런 스트레스까지 더하고 싶지 않다. "그럼 계속 혼자 할 거야?" 모르겠다. 솔직히 모르겠다. 리스크 관리라는 게 없었다 창업 초기엔 생각 못 했다. '내가 아프면?' 이런 거. 일단 만들고 보자. 고객 확보하자. 돈 벌자. 그것만 생각했다. 실제로 돈이 벌렸다. 고객이 늘었다. MRR이 올랐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이 늘었다. 고객사 120개. 다들 나를 믿고 쓴다. 내 시스템으로 예약을 받는다. 내가 쓰러지면 그들도 멈춘다. 백업이 없다. 대체 인력이 없다. 비상 연락망도 없다. 그냥 나 하나. 작년 여름에 배탈 났을 때가 최악이었다. 3일간 화장실에서 살았다. 탈수 올 뻔했다. 그 3일 동안도 CS 답했다. 화장실에서. 핸드폰 들고 변기에 앉아서 "네 확인하겠습니다" 타이핑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바꾸지 못했다.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몰랐다. 트위터에서 본 다른 솔로프리너들 나만 이런 게 아니었다. 트위터 인디해커 커뮤니티 보면 다들 비슷하다. "독감 걸려서 3일 못 일했더니 MRR 10% 떨어짐." "병원 입원했는데 노트북 들고 들어감ㅋㅋ" "휴가가 뭔가요? 모르는 단어네요." 웃프다. 다들 혼자 한다. 다들 쉬지 못한다. 다들 아프면서 일한다. 어떤 사람은 대안을 만들었다. "CS 챗봇 도입했어요. 80% 자동화." "파트타임 VA 고용. 주 10시간만. 월 50만원." "고객사한테 아예 말함. '혼자 합니다. 응답 느릴 수 있어요.'" 마지막 거 솔직해서 좋았다. 나도 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무섭다. 고객 이탈할까봐. 결국 안 했다. 계속 혼자 버틴다. 지금 이 순간도 이 글 쓰면서도 슬랙 켜놨다. 알림 2개 왔다. "내일 예약 확인 문자가 안 가는 것 같아요." "결제 영수증 재발급 부탁드려요." 답해야 한다. 5분 후에. 이 문단 끝내고. 몸은 여전히 안 좋다. 타이레놀 효과 떨어졌다. 다시 열 오르는 것 같다. 내일 병원 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오전엔 못 간다. 고객사 화상 미팅 있다. 신규 기능 시연. 오후에 가야지. 가서도 핸드폰은 켤 거다. 대기실에서 작업할 거다. 진료받는 10분 빼고는. 언젠가는 바꿔야 한다 알고 있다. 이 방식은 지속 불가능하다. 2년은 버텼다. 5년은 못 버틴다. 큰 병 걸리면 끝이다. 입원하면 회사 망한다. 사고 나면? 끝. 번아웃 오면? 끝.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바꿀 수가 없다. 돈 문제. 시간 문제. 믿고 맡길 사람 없는 문제. 다 얽혀 있다. 그래서 일단 버틴다. 오늘도. 내일도. 아프면서.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이렇게 힘든데 왜 후회 안 하냐고. 회사 다닐 때가 더 편했을 거 아니냐고. 맞다. 그땐 더 편했다. 아프면 쉬었다. 주말엔 일 안 했다. 월급은 고정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이 더 좋다. 내가 만든 걸 쓰는 사람이 120명이다. 그들이 돈을 낸다. 내 제품이 그들의 일을 돕는다. 회사 다닐 땐 그런 거 못 느꼈다. PM이었지만 결정권 없었다. 만들고 싶은 거 못 만들었다. 회의만 했다. 지금은 내 맘대로 한다. 만들고 싶은 거 만든다. 고객 피드백 바로 반영한다. 어제 받은 의견 오늘 배포한다. 이 속도감이 좋다. 그래서 아파도 한다. 힘들어도 한다. 언젠가는 바뀔 거다. 직원 뽑을 수도 있다. 투자 받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계속 혼자 할 수도 있다.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 버틴다. 감기 걸려도.내일 병원 다녀와서 또 일할 거다. 어차피 쉴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