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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차
- 10 Dec, 2025
PM 4년차 경험이 1인창업에서는 독이 됐다
PM 4년차 경험이 1인창업에서는 독이 됐다 오늘 또 새벽 3시까지 일했다. 고객사 1곳 요청한 기능 하나 때문에. 스타트업 PM 4년 했다. 그게 자랑이었는데, 지금은 저주다. 완벽한 기획서를 쓰는 PM, 혼자서기능 하나 추가할 때마다 노션에 기획서를 쓴다. 유저 플로우, 와이어프레임, 예외 케이스. PM 시절 습관이다. 개발팀한테 전달하려면 이래야 했으니까. 근데 지금은 개발팀이 나다. 노션에 3시간 쓰고, 개발은 1시간. 말이 되나. 외주 디자이너한테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다. A4 3장짜리 디자인 가이드 보내고, 레퍼런스 20개 첨부하고, 톤앤매너 설명 1시간. 디자이너가 말했다. "대표님, 그냥 카톡으로 대충 말씀하셔도 돼요." 아, 맞다. 여긴 50명 회사가 아니라 나 혼자다. 회의록을 쓰는 사람은 나, 참석자도 나더 웃긴 건 회의록이다. 고객사랑 통화 끝나면 회의록 쓴다. 구글 밋 내용 정리해서 노션에 올린다. 액션 아이템, 담당자(나), 데드라인. 누가 보냐고? 아무도 안 본다. PM 시절엔 회의록이 증거였다. "제가 저번 회의에서 말씀드렸는데요~" 회의록 링크 슥 보내면 끝. 지금은? 회의한 사람 나, 회의록 쓰는 사람 나, 실행하는 사람 나. 그래도 쓴다. 안 쓰면 불안하다. 이게 PM 출신의 병이다. 리소스가 없는데 계획은 대기업급 월요일 아침마다 주간 계획을 짠다.신규 기능 3개 개발 마케팅 콘텐츠 5개 작성 고객사 온보딩 10곳 블로그 포스팅 2개 유튜브 영상 1개화요일 저녁, 하나도 안 끝났다. PM 시절엔 이 정도 계획 당연했다. 개발팀 5명, 디자이너 2명, 마케터 3명. 내가 할 건 기획이랑 조율뿐. 지금은 개발도 나, 디자인도 (외주 요청까지) 나, 마케팅도 나. 근데 머릿속 계획은 여전히 팀 10명 급이다. 매주 계획 세우고, 매주 실패하고, 매주 자책한다. "왜 이것밖에 못 했지?" 이것밖에가 아니라 이만큼이나 한 건데. 우선순위는 정했는데, 다 1순위PM 교육 받을 때 배웠다. "우선순위를 정하라." 잘한다. 너무 잘해. 월요일에 노션 보드 만들어서, P0(긴급), P1(중요), P2(보통) 나눈다. 수요일쯤 보면 전부 P0다. 고객사 CS? 긴급. 신규 기능 개발? 긴급. 마케팅 콘텐츠? 안 하면 성장 멈춤, 긴급. 버그 수정? 당연히 긴급. PM 시절엔 P0는 정말 긴급한 것만이었다. 서비스 다운, 보안 이슈, 대형 고객사 요청. 지금은? 전부 내가 안 하면 안 되니까 전부 긴급이다. 우선순위 정하는 게 무슨 의미냐고. 어차피 다 해야 하는데. 혼자 하면 빠를 줄 알았는데 PM 시절 제일 답답했던 게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개발자한테 설명하고, 디자이너랑 조율하고, 경영진한테 보고하고. "내가 그냥 다 하면 3배는 빠르겠다." 창업하고 나서 깨달았다. 천만의 말씀. 기획 1시간, 개발 5시간, 디자인 3시간, 배포 1시간. 혼자 하니까 10시간. PM 시절엔 동시에 돌아갔다. 내가 기획하는 동안 개발자는 개발, 디자이너는 디자인. 지금은 순차적이다. 하나 끝나야 다음 시작. 더 느리다. 훨씬. 피드백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무섭다 PM 시절 제일 좋았던 건 동료였다. "이 기능 이렇게 가는 거 어때?" "음, 이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5분 대화로 3시간 삽질을 막았다. 지금은?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2주 개발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아, 이거 아닌데." 되돌릴 수 없다. 이미 2주 날렸다. 트위터에 물어본다. "이 기능 어떻게 생각하세요?" 답글 3개 달린다. 고맙지만, 우리 서비스 맥락을 모른다. PM 시절 동료들은 서비스를 이해했다. 컨텍스트가 쌓여 있었다. 혼자 창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리소스 부족이 아니다. 피드백 부재다. 완벽함을 포기하는게 제일 어렵다 오늘 배포한 기능, 버그가 2개 있다. 알고 있다. PM 시절이었으면 절대 안 냈다. QA 다시 돌리고, 버그 수정하고, 재배포. 지금은 냈다. 고객사가 기다린다. 버그 수정하려면 3일 더 걸린다. 3일 뒤엔 또 다른 긴급한 게 생긴다. "일단 내고, 빠르게 수정하자." PM 출신한테 이게 제일 힘들다. 완벽한 기획, 완벽한 QA, 완벽한 배포. 그게 자부심이었으니까. 지금은 완벽함이 사치다. 70점짜리 빠르게 10개 vs 95점짜리 천천히 3개. 전자가 답이다. 머리로는 안다. 가슴이 안 받아들인다. 배포 버튼 누를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PM 경험이 쓸모없다는 건 아니다 PM 4년이 독이 됐다고 했지만, 전부 독은 아니다. 고객사 요구사항 듣고 본질 파악하는 능력. 우선순위 정하는 프레임워크 (비록 다 P0지만). 유저 플로우 그리는 속도. 배포 전 체크리스트. 이건 도움된다. 문제는 '규모'다. PM 스킬은 팀 10명 규모에 최적화돼 있다. 1인 창업은 팀 1명이다. 10명분 프로세스를 1명한테 적용하면 죽는다. 지금 배우는 중이다. 어떻게 줄일지. 노션 기획서 3시간 → 30분으로. 회의록 안 쓰기 (진짜 중요한 것만). 우선순위 P0/P1/P2 → 오늘/이번주/언젠가. 완벽함 95점 → 70점. PM 출신의 강점을 살리되, 1인 창업 맥락에 맞게 다운사이징. 쉽지 않다. 4년 습관이 2년 만에 바뀌겠나. 그래도 조금씩 나아진다. 혼자 한다는 건 PM이 아니라 창업가라는 것 가장 큰 깨달음은 이거다. PM은 '잘 만드는 사람'이다. 창업가는 '살아남는 사람'이다. PM 시절엔 제품 퀄리티가 전부였다. 완벽한 기획, 매끄러운 UX, 버그 제로. 창업하고 나서 알았다. 완벽한 제품보다 중요한 게 많다. 고객사 1곳이라도 더 확보하기. MRR 350만원을 400만원으로 올리기. 번아웃 안 오게 페이스 조절하기. 고객 CS에 빠르게 답하기. 제품은 70점이어도 된다. 고객이 만족하고, 돈을 내면. PM 마인드는 100점을 원한다. 창업가 마인드는 70점으로 살아남기를 원한다. 지금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PM 출신이라 70점에 만족 못 하지만, 창업가라서 100점 만들 리소스는 없다. 이 긴장 속에서 매일 일한다.PM 경력이 독이 된 건, 내가 아직 1인 창업가가 아니라 혼자 하는 PM이기 때문이다. 언젠간 바뀌겠지.